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Why Fish Don't Exist) - 룰루 밀러 (Lulu Miller)
우리는 가슴속에 스스로가 정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은 개인적인 것일 수도, 사회적인 것일 수도,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믿음이 진실일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진실'이라는 개념조차 우리의 상상 속에만 떠다니는 존재일 수도 있다. 누군가가 세상에서 질서라는 신기루를 걷어내면 비로소 언제나 실재하는 혼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 책의 저자 룰루 밀러는 이 우주가 질서보다는 혼란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이루고 있는 혼란은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으며 살아가면서 우리 마음대로 되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러한 인생의 속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룰루 밀러가 전하는 것처럼 세상의 혼돈을 받아들이는 일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나를 포함해서, 이 사회에 적응하여 충실한 사회인으로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질서를 받아들이고 안정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미래를 온전히 받아들인다. 이름과 경력도 알지 못하는 어떤 전문가의 인터뷰, 미래를 예측하고 다가올 미래를 서술하는 다큐멘터리, 익명에 감춰진 사람들이 다수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말하는 미래에 대한 상상을 보며 우리는 미래 사회를 비관한다. 이건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하루가 다르게 치즈 창고에서 사라지는 치즈를 보며 "우리는 굶어 죽을 테니까 우리에게 밝은 미래는 없어!"라고 말하고 있는 쥐들을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나도 룰루 밀러가 했던 것처럼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다녔던 적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은 혼돈과 고통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이후로도 삶의 고통을 짊어지면서까지 그대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룰루 밀러가 초반에 찾았던 것처럼 나 또한 '강한 희망'을 삶의 이유로 찾았었다. <스위트홈>이라는 만화에서는 자살하려고 했던 주인공이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특별 행사(정확한 내용은 아닐 수 있지만 주인공의 자살을 연기해 준 특정한 날은 주인공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과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를 보기 전까지만 살자고 했었고,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저자는 수용소에서 나가는 날에 집에서 자신을 따듯하게 맞이해 주는 가족을 상상하며 끔찍한 수용소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이외에도 강한 희망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주된 원동력으로 자주 소개되곤 했다. 하지만 '희망'의 유효기간이 끝나고 난 이후에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이 채굴에 참여하고 있는 암호화폐를 뒤늦게 채굴하는 일과 마찬가지라고 느껴졌다. 갈수록 어려워졌고 언젠가는 이유를 찾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했다. '강한 희망',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 '꿈', '가까운 사람', '미련', '복수'와 같은 '살아야 할 이유'는 단기적인 것에 불과했고 언젠가는 그 기한이 만료된다. 그렇다면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사람이나 '살아야 할 이유'를 정했지만 기한이 만료된 사람은 걸어 다니는 송장처럼 살아가야 하는 걸까?
세상은 혼돈으로 가득하다. 정해진 건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치즈 창고의 치즈가 갑자기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 새로운 치즈 창고를 찾기 위해 떠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전처럼 치즈를 배불리 먹으며 살아있는 순간을 즐긴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옳은 행동은 없다. 나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찾아야 할 것은 '살아야 할 이유'보다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룰루 밀러는 고통과 달콤함의 굴레를 항상 생각하며 예상할 수 없는 인생의 전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흥미진진한 미래를 경험하면서 살아보자고 전하는 듯하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자신만의 대답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견해일 것이다.
나의 경우,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며 살아간다."라고 스스로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사랑의 대상은 언젠가 나타날 수도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는 미지의 존재, 가족, 정말 친한 친구, 나의 이니스프리 호수 섬(The lake Isle of Innisfree) 등이었다. 이 대답은 아직까지 유효하지만 룰루 밀러의 견해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6살 무렵 엄마의 손을 잡고 유치원을 가던 어린 시절의 나이다. 집에서 유치원까지의 거리는 가까웠지만 유치원 가는 길에 주변에 있는 식물과 곤충을 관찰하며 가느라 5분 거리를 15분 동안 걸어서 갔었다고 한다. 지금도 비슷하게 행동하며 살고 있어 수국과 거미를 보면서 유치원에 가는 6살의 내가 금방 상상이 됐다. 매일 가는 길이지만 한결같이 주변을 둘러보며 즐기면서 가는 태도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지금 나의 대답이다.